
진실을 말하는 과학, 거짓을 분석하는 통계
수사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진실을 가리는 일입니다. 증거는 불분명하고, 진술은 엇갈립니다. 이럴 때 수사관들이 의존하는 도구 중 하나가 바로 폴리그래프 검사, 흔히 말하는 ‘거짓말 탐지기’입니다.
그러나 폴리그래프 결과는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 박희정 수사관은 이 질문에 대한 과학적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정보획득 분석(Information Gain Analysis)’이라는 베이지안 확률 기반 통계기법을 수사 현장에 적용한 연구입니다.

베이지안 통계, 수사에 들어오다
기존의 폴리그래프 분석은 반응을 ‘진실’ 혹은 ‘거짓’으로 단순 분류하는 데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그 반응이 수사 판단을 얼마나 바꾸는지를 수치로 측정합니다. 바로 ‘정보획득값(Information Gain)’이라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피의자가 유죄일 가능성이 50%였다고 가정할 때, 거짓 반응이 나오면 그 확률이 얼마나 올라가는지를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단순한 예/아니오 판단을 넘어서, 판단의 ‘무게’를 수치로 측정하는 접근입니다.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 분석 대상: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실시된 폴리그래프 검사 574건
- 분석 방식: 검사 결과(진실, 거짓, 판단불능)를 실제 기소 여부와 비교
- 핵심 지표: 사전/사후 유죄 확률의 변화, 즉 정보획득값
연구 결과, 거짓 반응이 나타났을 때 유죄 확률을 높이는 정보획득값은 최대 0.27까지 증가했습니다. 이는 해당 반응이 수사 판단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보다 기계가 낫다?
연구팀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일반인과 거짓 탐지 전문가의 판단도 함께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판단 주체 | 정보획득값 |
| 폴리그래프 거짓 반응 | 0.29 |
| 전문가의 판단 | 0.15 |
| 일반인의 판단 | 0.08 |
즉, 폴리그래프는 전문가보다 약 2배, 일반인보다 3배 이상 높은 정보 제공력을 보였습니다. 거짓을 감지하는 데 있어 기계가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음을 수치로 입증한 것입니다.

진실 반응은 무죄의 증거가 될 수 있는가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의의는, 폴리그래프가 유죄 추정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진실 반응이 나타날 경우, 사전 유죄 확률을 낮추는 데에도 기여하며 무고한 피의자를 방어하는 과학적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수사에 들어선 ‘확률의 눈’
이번 연구는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라 수사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줍니다. 심증에 의존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정량적 데이터와 확률 기반 추론이 결합된 새로운 수사 모델이 등장한 것입니다.
과학수사의 미래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가치’에 달려 있습니다. 증거란 단순히 존재 여부가 아니라, 수사 판단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가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참고자료
- 발표자료: 「폴리그래프 검사 유용성 검증 - 정보획득 분석을 중심으로」
- 발표자: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 박희정 수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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